RUN, BOY. RUN.

 

우선 이걸 영화관에서 봤음에 감사...뉴유니도 그렇고 그냥 재밌대! 해서 무턱대고 영화관 찾아간 것들에 더 크게 감동받고 가슴떨려하는듯 아무튼 잘 매끈한 차체만큼이나 잘 빠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RPM은 수학문제집 피트는 사람이름 자동차는 예쁘고 볼일이고 페라리는 빨간색이 최고 포드는 개츠비네 차! "이게 자동차에 대한 지식의 전부인 사람이고 이걸 보러 간 이유는 단지 우연히 본 단 하나의 후기가 이 영화를 '미친듯이 재밌다'고 평해서였다. 당연히 줄거리에 대한 정보도 없었고. (그래도 제목이 쩌렁쩌렁하게 외쳐준 덕에 포드랑 페라리가 한판 붙는 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긴 해) 워낙 차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다보니 주인공들이 하는 이야기의 80%를 '음...그래 너네 뭔가 절박하고 진지하구나' 이렇게 패스하가며, 거의 뭐 순혈 문과가 인터스텔라 보듯 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가슴 떨리게 재밌더라. 그 증거라 할만한게 요새 집중력이 떨어져서 웬만큼 긴 영화에는 집중을 잘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정보를 알아보고 나서야 이 영화의 러닝타임이 2시간 반에 육박하게 길다는걸 알게 됐다. 그 긴 시간을 체감조차 못할 정도로 전체적으로 지루한 부분 없이 매끈하게 뽑혔다는 소리. 그렇지만 마냥 산뜻한 오락영화로 넘기기엔 뒤에 이르러 목넘김이 따가운 부분이 있어 콜록거리게 된단 말이지. 마지막에 마일스의 죽음이나 그 후 남겨진 사람들의 일상을 꼭 보여줘야 했을까...싶다가도 그 또한 한 사람의 생의 마지막이니까. 이게 단지 포드와 페라리의 대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켄의 삶을 조명하기도 한 영화고. 최후반부의 장면들이 에필로그의 역할을 하지 않았나...라고 생각하면 납득이 된다. 특히 배우들 인터뷰를 읽어보니, 켄과 그의 가족들을 비춰주고. 그에 비해 캐롤의 삶은 상당히 절제해서 보여줬다고 하던데. 이 영화의 두 주인공 중 좀 더 '메인'에 해당하는게 있었다면 그게 바로 켄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감독은 내도록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마음 속에는 그림자가 가장 짙게 드리웠던 그 장면들을. 온 마음을 다해 차를, 차와 함께 달리는 것을 사랑했던, 그리고 사랑하는 것으로 하여금 마지막을 맞이했던 켄의 마지막을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경쾌하게 내달리기만 하던 이 영화의 마지막에 짜넣은 것이 아닐까.

하지만 다소 쓸쓸하고 무거운 결말조차도 이 영화의 폭발적인 재미를 반감시키진 못했다. 레이스 파트들만큼은 마리오카트 한번 해본 사람이라면, 나만큼 지독한 차알못이라 한들.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주먹을 꽉 쥐게 만들거라 생각한다. 아니, 외려 나는 그 상영관에서는 내가 제일 몰입을 깊게 했던 것 같다. 트랙에서 차 한대가 뒤집어지거나, 터지거나, 하여간 나가떨어질때마다 허업 헉 어억 하도 큰 소리까지 내어가며 숨을 삼키곤 했으니까. 더 빠르게, 라는 가장 단순한 인간 욕구가 몰입을 본능적으로, 폭발적으로 이끌어내서이지 앟을까. 그리고 사운드트랙도 외따로 기억에 남을만큼 강렬하진 않지만. 매번 멋지게 보조를 맞춰줬다. 묵묵히, 멋지게 역할을 잘했어 마치 영화 속의 엔지니어들처럼. 

+추가. 계속 듣고 있으니 마음이 바뀌었다. 충분히 멋진 사운드트랙이다. 특히 <Le mans66> 트랙은 "7000+ LIKE HELL" 이 문구가 떠올라서 계속 가슴이 뛴다. 한동안 마일스의 하강=상승 씬이 생각나서 너무 심박수가 빨라진다는 이유로(...) What's up danger를 못 들었던게 떠오르기도 하고. 여운이 좋은 영화에서 사운드트랙이 하는 역할은 과연 무시할 것이 못 된다.  빠른 비트나 점점 속도를 올려가는 레이싱카가 내는 

또 하나 소소한 관람의 재미는 60년대의 분위기가 영화에 선명하게 그려져 있어, 50년대가 여즉 매달고 있던 구시대적인 느낌쯤은 가뿐하게 떨치고 내달리는 유쾌한 분위기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는 것.  세계대전의 언급도 그렇거니와 존 번셀이 맡은 리 아이오코카가 초반에 한 프레젠테이션이 이미 '최초로 주머니에 제가 번 돈을 꽂은 열일곱살들'이 부상하는 베이비붐 세대. 자극적이고 빠르고 섹시하고 세련된 것들을 추구하던 60년대의 상황을 관객들에게 때려박아주고 지나가지 않던가. 화면도 최선을 다해 레트로 무드를 위시한다. 바랜듯 노르스름하면서도 원색이 강하게 돋보이는 색채라던가. 주인공들과 엑스트라들이 입고 등장하는 가벼운 원피스 바이시클 팬츠 피케 셔츠, 알록달록한 헤어밴드라던가 개성적인 색의 클래식 카들이라던가… 그리고  스토리상 60년대의 이탈리아가 잠깐 나오는데.  팝 소다 같은 미국과는 사뭇다른  그 분위기 대조가 재밌다. 우리가 이탈리아 하면 떠오르는 (한동안 돌테 앤 가바나의 커머셜들에서 자주 묘사한) 한껏 관능적으로 느긋한 우아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래주의적인 그림이 걸리고 창 밖으론 온대기후 식물들이 보이는 페라리네 사무실이 띈 분위기도 무게를 잡으려고 애쓰지만 뭔가 투박한 포드네 것과는 달랐고. 그리고 이탈리아인들 특유의 여유와 자부심 묘사마저. 이 분위기를 잘 녹여낸 사운드트랙이 <Ferrari Factory>인듯.  쓰다보니 이탈리아 칭찬을 실컷 해댄것 같은데, 변명을 하자면 총대를 맨건 다른 누구도 아닌 영화 자체다.  아니 감독님. 이렇게 한껏 이탈리아 띄워주다 맨 마지막에 무슨 <대부>마냥 묵직하게 경의를 표하는 엔초 페라리의 모습까지 넣어주면 어떡해요. 이쯤되면 미국영화가 아닌것 같은데.  이탈리아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덧붙인다. 깨알같이 재밌는 부분이라면 포드네 차는 정말 못생겼고 거기 맞서는 페라리네 차는 정말 아름답다. 바디니가 몰던 21번 페라리는 지금 생각해도 그 놀랍도록 미래적이고 과감한 유선형 디자인에  빗댈걸 찾기 어려울 정도로 순수하게 새빨간 차체가 눈 앞에 아른거려서 군침을 삼키게 되는데. 슬프게도 GT40은... 하늘색이란 것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중간에 엔초 페라리가 포드더러 "못생긴 공장에서 만드는 못생기고 쪼그마한 미국 차!’라며 신랄하게 비난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반박하기 어렵지 않나(ㅋㅋㅋ) 중간에 잠깐 나왔던 머스탱도 미국 미감의 그것. 비계덩어리라는 표현은 아무렴 너무했지만 내 눈에도 매끈한 맛이 없긴 했어.

크리스찬 베일이 이걸로 아카데미 리스트에 오를 수도 있다길래 에엥? 이런 영화로? 라며 의아해했는데(인정하자면 연기 노미네이트는 례-술 영화로 되는거란 편견이 있다.)  영화관에서 걸어나올땐 수긍하고 있었다. 그가 켄을 묘사하는 방식에는 정말 눈물나는 애틋함이 있었다. 정말…정말 그냥 차를 모는걸 사랑하는거 같아. 정말 간절한거 같아. 처음엔 무능한 가장 주인공 클리셰를 담당하는 캐릭터인줄 알았는데 가면 갈수록 그 순수함이 사람을 끌어들인다. 눈빛. 그 눈빛. 전에 <파에드라>(1962) 감상을 읽다 "단 한 점의 극단도 여지도 남기지 않고 사랑으로 소멸해버리는 일생을 사는 존재는 불행한 걸까, 행복한 걸까." 이 문장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는데 대상이 사람이 아니었을뿐 딱 켄 이야기가 아닐까. 무엇 하나에 대한 사랑으로 사는 순수한 존재 그 자체를 베일이 정말 잘 묘사한듯. 하지만 저 파에드라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 마일스의 답은 준비되어 있다. 아들보다 더 크게, 목청껏 천진하게 부르던 노래의 가사가 단순하고도 명백하게 제시하지 않는가. H-A-P-P-Y. 그리고 7000rpm의 순간. 그는 셸비가 한때 있었던 그 순간 속에 있음을 그 눈빛을 보고 알았다. 르망의 골인지점은 여즉 떨어져 있었지만. 마일스의 골인 지점은 그곳이 아니었을까. 순수한 드라이버. 오로지 달리기 위해 태어난 것 같던 마일스는 그렇게 달려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 보는 나는 속이 쓰려 견딜 수 없었지만, 기어를 낮출때 그는 의연했다. 그리고 그걸 알아차린 것이 이 영화에서 셸비와 더붙어 그를 잘 아는 몰리였고. 사실 영화를 보면서는 켄이 위험하거나 힘들어하는 순간이 올때마다 켄보단 몰리 걱정이 앞섰는데 생각해보면 몰리는 켄을, 그의 사랑과 순수한 집념을 잘 아는 사람이니 그를 놓아줄 수 밖에 없었던건가 싶기도 하면서. 무슨 마음이었을진 아직도 가늠이 안된다. 그래서인지 마지막에도 셸비보단 끝까지 누구에게도 한점 원망 없이 의연한 몰리 모습이 더 눈에 밟혔다. 
아. 그리고 켄이 차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새삼 깨달은 장면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아들 피트와 활주로에서 나누던 대화씬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차를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싶다면 어디가 한곈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말이 이상하게 위로처럼 와 닿더라. 정말로 그것을 사랑한다면, 최선을 다해 달리며 고통 속에 신음하는 그것을 가엾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차를 나로 치환한다면 충분히 의미있는 메세지가 아닌가. 레이스에 대한 영화지만, 재밌게도 이 영화가 거푸 말하고자 하는 것들은 모두 골인 지점. 1등의 영광, 맹목의 질주와는 대척점에 서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달려서 얻고자 하는 것은 우승컵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롯이 나만이 존재하는, 비로소 내가 누구인가. 그 단 하나의 거대하고 궁극적인 질문에 이르게 되는 7000rpm의 순간.

 

 

 

상관이 있는듯 없는 잡담들

-놀란형제는 취향이 비슷하구나 베일 머리 짧게 깎으니까 카비젤 닮아서 놀랐음ㅋㅋㅋ

-셸비의 야바위꾼스럽고 입담 좋은 면모 보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 근데 이렇게 현란하게 입 놀리는 멧 데이먼이 99년의 쮜질 리플리였단거 생각하면 자꾸 놀라고(한편 99년의 그린리프는 지금은 교황이 되어있는데 말이죠)

-베일은 노빠꾸맨이 틀림없다 몇년 전에 트위터 시작하고 'Hello world' 트윗을 올린지 얼마 안되서 나 트위터랑 안 맞는듯ㅇㅇ이 한마디를 남기곤 10년이 넘도록 사이버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일화도 충분히 웃겼는데 이번에 시네 21이랑 한 인터뷰에서도 얼마나 빨리 달려봤냐는 질문에 132km 였나? 아무튼 그 이상은 보험이 허락을 안 했다고 딱 잘라 말하는것도 너무ㅋㅋㅋㅋ아 이아저씨 진짜 웃겨 

-레이스를 보고 싶다가도 누군가는 죽을수있단거 모두들 어떻게든 상대를 추월하려는 동시에 뒤에서 바짝 쫓는 죽음보다 빨리 달리려고 하고 있단걸 생각하면 그걸 보다 내가 혼절할것 같음 보는 사람들도 하는 사람들만큼 강심장인듯. 이게 얼마나 위험한 스포츠인지. 내가 마일스의 우승컵을 뺏아갔다며 도끼눈을 뜨고 흘기던 맥라렌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행중에 사고로 명을 달리했다는걸 읽고 새삼 놀랐다. 

 

 

 

 

'그것'- 베네딕트 컴버배치 / 빅터 프랑켄슈타인-조니 리 밀러

 

 

남성중심주의 시각의 재해석은 <새로운>이란 수식어를 앞에 붙여봤자 얼마나 눈물나게 뻔한가... 별 두개 짜리지만 그래도 마지막 장면이랑 사운드트랙 배우들 연기(그리고 의상) 때문에 별 하나 반 더 줌. 극을 만든 시선이 새롭지 않으니 극 자체가 2019년에 새로이 선보이는 것이라곤 믿기지 않게 구식으로 느껴진다. 초반의 제작자 인터뷰에서 드러난대로 영화에 의해 목소리를 뺏긴 괴물에게 원작에서처럼 목소리를 새로이 쥐어준 것. 그것도 상당히 지적인 층위를 가진 자아를 준 것은 높이 살 점이다. 창조주에게 질문하고 반발하며. 고뇌하는 자아. 이로써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인간 창조'는 완성된 셈이다. 문제는 이 괴물이 내는 목소리가, 철저한 사회 주류의 시선에. 억압받는 소수자의 느낌만을 덧씌운 것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 연극이 가진 남성 시선의 한계를 지적하려면 어디서부터 입을 대야할지 모르겠다만 이게 가장 명확히 드러나는 것은 결국, '여성 캐릭터'가 연관된 부분에서다. 우선 여성 괴물의 창조. 아. "여자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지. 성격 특질 그런걸 어떻게 고려하나." 그 대사에서 짜증이. 생물학적 특징만 다르게 해주시면 됩니다, 좀.

여기서부터 극작가가 '여자'에 대해 잘 모르고 못 쓴다는게 티가 나더라.  여자에 대해 잘 모른다는거, 별거 아니다. '여자어' '여자의 섬세하고 특이한 특질' 따위에 대해 무지하다는게 아니다. 여자가 남자랑 다를게 조금도 없다는 그 너무너무 뻔한 사실. 그걸 몰라서 “여자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거지?”같은 대사씩이나 쓰고, 엘리자베스 캐릭터에 대한 비판에서 더 자세히 서술하겠지만. 여자캐릭터를 ‘캐릭터’(목적)이 아니라 상황을 편리하게 굴리고 원하는 대사를 이끌기 위한 수단으로 만든다는거지...괜히 좋은 여성 캐릭터를 만드는 방법으로 남성 캐릭터를 창조한 뒤, 성별만 바꾸는 거라는 이야기가 있는게 아니다. 자꾸 '여성'이기에 갖는 특성을 부여하려 들면 외려 다른 성별이 갖는 편견이 어쩔 수 없이 반영되기 때문에 현실과 멀어진 캐릭터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아무튼 이토록 짧은 대사에도 비춰진 한계는 보다 극이 진행되며 보다 명확해진다. 분명 괴물이 처음 요구한 것은 자기처럼 ‘동등히 흉측한’ 생물이었는데 이게 언제부터 갈라테이아 창조쇼가 됐는지. 조금 우스운건 분명 사회적으로 만연한 미의 추구에서 비교적 자유로울(비록 아가타를 아름다운 부인이라 칭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에 완전히 무지하다고 말할 순 없겠다.) 괴물도, 자기를 때려 죽여버리라고 말하던 아가타와 유사한 외형을 가진 반려가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조금도 자각하지 못한건지. 아름다운 신부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니 천사같은 나의 이브 운운하며 기뻐한다. 그래. 이 역시 괴물이 너무도 외로워 자신의 고통(괴물의 흉측한 외형이야말로 그가 겪는 고통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데도!)을 배우자가 공감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생각조차 못해봤다고 쳐 주자. 하지만 완성된 여성 괴물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사랑의 감정을 토로하는 괴물의 모습은...글쎄. 데라세 영감에게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똑같이 누덕누덕하고 흉한 모습의 여성 괴물과 애틋한 춤을 추던 그 장면과 너무 대비되긴 하더라.

여담이지만 극에서 아주 짧게 등장한 대사에서 스친 생각인데. 그런거나 슬슬 나왔으면 좋겠다. 원작과 달리 빅터는 약속대로 여성 괴물을 소생시키지만. 이 여성 괴물은 제가 창조되기 전에 체결된 불공정한 협상에(이걸 이 극에서 언급했단게 좀 웃긴 포인트.) 거부해 창조주(아버지)와 아담(남편)에게서 벗어나 자아를 찾으려고 시도하는 그런 스토리. 2019년인데. 프랑켄슈타인을 리메이크한 작품이 전세계에 한둘이 아닌데. 아무도 이런 기본적인 탈가부장, 인형의 집 스토리 라인을 이 불후의 명작에 적용해 볼 생각을 안 했다는걸까. 일단 신선하잖아. 

그리고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는 유일한 여성 캐릭터라 그런지 취급이며 캐릭터 빌딩이 처참한 수준이었다. 빅터에게 나도 네가 아는 것들을 알고 싶다고 난 교육의 기회가 없었을 뿐이리고, 로마 파리 미국에 가보고 싶다 말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나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테니 돌아와서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캐릭터가 줏대 없는걸 넘어서 주관이랄게 없고 상황을 이끌어내기 위해 주어진 대사만 치는 느낌. 남자들이 문명과 오만을 상징하고 여자들이 섭리와 자애를 상징하는 구도에도 질린지 오래라 그나마 엘리자베스가 대변하는 듯한 가치도 신선하기보단 그걸 이야기 하고 싶어서 별 설명도 없이 캐릭터가 그렇게 아이에 집착하게 했냐? 싶기도 하더라고. 그리고 강간씬. 조금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괴물과 극이 같이 추락하는 순간이었다. 괴물이 타락해 ‘인간’이 되었음을 강조하고 싶었던것 같은데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나. 그냥 ‘저열한 인간 남자’가 되었을 뿐이잖아. 일리아드나 영웅전의 야만적인 서구 영웅(남자)들을 인간의 스탠다드로 두는것좀 그만해. 이 순간부터 괴물에게 이입할 수 없게 되었다. 단지 기만(거짓말)에서 끝나면 좋았을 것을. 차라리 엘리자베스를 그저 살해하는 것으로 복수를 저지르면 좋았을 것을. 어째서 여기에 원작에도 없는 강간을 묘사했나. 살인은 괴물이 여러번 저질렀으니 더 강한게 필요하다고 생각이라도 한걸까? 아니면 그 현장을 목격하게 함으로서 빅터의 복수심을 더욱 부채질하려고? (만일 그렇다면 이는 더 나쁜 결단이라 할 수 있겠다) 좀 불쾌한 이야기지만. '강간'은 역사적으로는, 남자들이 저지르는 죄로 여겨지지 않았나. 괴물이 목소리를 갖게 된 이상. 고뇌하는 그를 지켜보며 인간의 사악한 면모를 발견하는 동시에, 그에게 동정심을 느끼며 이입하게 하는 것이 내가 이해한 창작자의 의도인데. 이 윌리엄이나 데라세 일가의 살해와 달리 너무도 생생하게 묘사되었기에, 외려 나는 그 순간에 엘리자베스에게 이입해 공포를 느꼈다. 여기서부터 괴물은 컴버배치의 표현대로 endearing한 존재가 더는 아니게 된다. 이입과 성찰의 통로가 일부 차단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여기에 현실에 실존하는 장애인 남성의 비장애인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겹처보여서 정말 괴로웠다. 창작자의 의도대로 현실을 상기시키며 의미를 확장시키는게 아니라, 단지 세심하지 못한 발상으로 인해. 우연히 현실과 불쾌하게 오버랩되는 느낌. 와중에 엘리자베스는 또 ‘자애로운 포용자’와 ‘죄 없는 희생양’ 역할과 남자를 파멸시키기 위해 여자를 범한다는 클리셰를 그대로 수행하구 있고. 살아서는 완벽한 아내 죽어서는 딸기같은 입술에 부드러운 가슴의 여인으로 언급되는 엘리자베스를 보면 이 극이 철저히 남성의 시각에서 쓰였음이 드러나지 않나. 여자는 갈등에 '연루'되는 존재. 그 갈등 요소들 중 하나. 그러나 결코, 칼날의 양 선상에 남성과 동등하게 선 적 없다. 

물론 이 남성중심적 시각은 몰입을 방해하고 특정 부분에선 불쾌하게 만들기까지 했지만. 흥미로운 지점들도 분명 존재한다. 어제 본 사바하가 떠오르기도. 물론 사바하는 신의 존재를 궁극적으로 긍정하면서도 종교적인 관점에서 신이 되고자 한 인간을 바라본다면 프랑켄슈타인에서는 어떤 우주적 힘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고 작품 안에서도 주인공은 반복적으로 신을 부정하며 인간이 ‘인간의 이성과 학문 능력’으로 자연에 도전하고자 한다. 둘다 신이 되고자 한 인간이 파멸하는 이야기를 다루지만. 물론 이건 극의 해석이 특별히 흥미롭다기보단 메리 셸리의 원작이 가진 포인트이므로, 이로 인해 극에게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겠다. 

우리 모두가 사라져도 남아 있을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인간 찬가이자 동시에 경고인 원작. 단촐하지만 힘있는 무대와 압도적인 사운드트랙.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 그러나 이처럼 좋은 재료들을 썼다면 이것보다는 새로워야 했다. 이것보다는. 

 

 

'Cinema' 카테고리의 다른 글

Ford v Ferrari  (0) 2019.12.07
크리스마스 맞이 연말결산을 합시다(수정중)  (0) 2018.12.25
부탁 하나만 들어줘(2018)  (0) 2018.12.23
신비한 동물과 그린델왈드의 범죄(2018)  (0) 2018.12.23
Troy(2004)  (0) 2018.12.22

 



CINE 2018 






근데 사실 웬만한건 다 보고 재밌어~ 하는 편이라 

극불호 불호 극호를 찾는게 더 빠를듯.





삶의 한 조각: <셰이프 오브 워터> <현기증>


수작: <옥자> <화씨 451>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 


좋은 작품: <죄 많은 소녀> <스파이더맨: 인투 더 스파이더버스> <바닐라 스카이> 

<아랫집>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인터뷰> <더 폴> <더 파티> <폴아웃> 


괜찮은 작품:  <이터널 선샤인> <쥬라기 공원> <코코> <태양은 외로워>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장화, 홍련> <아메리칸 뷰티> <파리 이즈 버닝>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킬링타임에 제격: <부탁 하나만 들어줘> <레이디스 나잇> <민 걸즈> 

       <위대한 개츠비> <케이트 앤 레오폴드>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위아더 밀러스> <앤트맨과 와스프> <인피니티 워> 



-------------------------------------------------



눈뽕이든 음악이든 1인분은 하지만 그게 전부 : <치코와 리타> 

<오리엔트 특급 살인> <레오파드> <트로이> <보헤미안 랩소디> <마놀로와 마법의 책> <페어웰 마이 퀸>


별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원더풀 라이프>

<철콘 근크리트> <리즈와 파랑새>







Chit-Chat


아 영화 분류하는거 내겐 너무 힘든 일이다 기준이 정말 여러가지라 ^.^ 

애매한 분류보다는 도움 될 그간 본 영화들 몇개 한줄평


생각할수록 괜찮은 하이틴 뮤비(레이첼 사랑해)

: 민 걸즈


 사실 시각 효과만으로도 제 몫을 다했지만 상큼하고 까리하기까지 한(극장에서 안 본 이들이여 후회할지어다) 

: 스파이더버스


알랭들롱한테 왜 콧수염 붙이셨어요 + 명화 같은 미장셴

:레오파드


부럽기만 한 권태 그리고 서늘한 그림자와 같은 아름다움

:레클리세


뭔데 영화 끝났어? 진짜? 여기서?

: 페어웰 마이 퀸, 인피니티 워


로어링 트웬티즈는 맞는데 개츠비는 아니야

: 위대한 개츠비


인정하긴 싫지만 나는 미국 비급 개그 감성에 약하다

: 위 아더 밀러즈


"I love you, Evangeline"

: 공주와 개구리


이단 헌트에 대한 아주 깔끔한 헌사

: 미션 임파서블 폴 아웃


퀸을 알게 해준건 고마움

: 보헤미안 랩소디


손 좀...씻든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쿠바 재즈 노란 원피스와 코럴 립스틱 우아한 척 하는 시대의 차별과 혐오

+대책없는 찌질남과 감동적인 해후

:치코와 리타


Tale as old as time~

: 미녀와 야수


추리소설 테마의 오트 쿠튀르 f/w 컬렉션

:오리엔트 특급 살인


질척임 없고 어처구니도 없는(그래서 좋은) 개그 정서 

그리고 은근히 준수한 비주얼과 선곡센스 

: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


10년만에 나와 준 것만으로 고마움(그리고 재미도 있었지)

: 인크레더블 2


다들 저 남자를 본받아라

: 케이트 앤 레오폴드


가끔 테마곡이나 엔딩곡 들으면서 예견된 사랑을 눈 앞에 뒀지만 이를 전혀 모르는 척 하면서 지하철 타면 재밌음

: 이터널 선샤인


80년대 빈티지 장난감 같아서 그 어색한 만듦새 또한 매력

: 라비린스


모범적인 패밀리 어드벤쳐 영화지만 스릴이 모자란건 결코 아니다

:쥬라기 공원


티타임용 공포영화

:저주받은 집의 한 송이 꽃


 거칠고 날카로운 서늘하고 버석한

: 죄 많은 소녀


"새해 복 많이 받아라 개같은 년"

: 무뢰한


어딘가 엉성하게 벌어진 틈 사이로 건질건 결투씬과 브래드 피트의 핫바디

:트로이


그 시대 특유의 무드란게 있지 이를테면 원색의 드레스와 코러스가 듬뿍 들어간 사운드트랙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블랑시의 모든 시적인 대사들을 비비안 리의 우아하고도 예민함 서린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는 것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


테 퀴로 라 무아르테

: 마놀로와 마법의 책


이젠 더 이상 로그인 창의 Remember Me(아이디 기억하기)를 예전처럼 볼 수 없어

:코코


마냥 예쁘고 선하지만은 않은 저것이야말로 진짜 순수의 면면

:비밀은 없다









'Cinema' 카테고리의 다른 글

Ford v Ferrari  (0) 2019.12.07
프랑켄슈타인 National Theater Live 후기 백업  (0) 2019.04.08
부탁 하나만 들어줘(2018)  (0) 2018.12.23
신비한 동물과 그린델왈드의 범죄(2018)  (0) 2018.12.23
Troy(2004)  (0) 2018.12.22


https://youtu.be/_U0R5xriqzk
듣고 너무 좋아서 울 뻔한 오프닝 시퀀스 삽입곡



초반: 쟈근 대럼쥐 스테파니에게 불꽃 플러팅을 펼치는 션과 에밀리 부부 이야기
후반: 스릴러를 가장한 불꽃 배틀레즈

사실 스포 다 봤는데 스토리 설명한 텍스트 상으론 불호일줄 알았는데 연출이 되게 코믹해서 의외로 호였음. 폴 페이그는 나랑 꽤 잘 맞는다는걸 연거푸 확인하게 되는. 와중에 선곡센스 코디센스도 훌륭. 또 폴 페이그 영화에선 늘 페미니즘 코드가 확연히 드러나는 대사들이 빠지지 않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 “미안해라고 하는건 여자들의 좆같은 버릇이야.” 션은 중심인물인 척 하다가도 결국 대결 구도에서 겉돌게 되고. 에밀리 vs 스테파니 이 구도가 핵심인데 이게 여적여가 아니라 그냥 인물(사람)대 사람의 대립으로, 심지어는 조금의 피카레스크나 블랙 코미디 같은 느낌까지 나서 꽤 좋았다. 거 봐 여자랑 여자가 대립한다고 여혐이 아니라니까...둘이 합심하고 에밀리의 죄를 션에게 뒤집어씌워도 좋았겠지만 에밀리 대 스테파니의 대결이 끝까지 이어진 것도 그런 의미에서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

근친이나 존속살해같은 무거운 주제들이 나오는데 막 생각만큼 충격적이고 무겁게 다루어지진 않은 느낌.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정도로도 청불 딱지를 먹겠지🤔

그나저나 스테파니 귀여워 크아악 쟈그마하고 똘망하고 얄망하고 쭙쭙 뽀뽀해주고 싶다 ㅠㅜㅠㅠ넘치는 소동물미에 안나 켄드릭 연기까지 상큼하고 사랑스러워서 보는 내내 사랑스러움을 주체하지 못했음. 사실 에밀리가 순진하고 어리버리한 캐릭터라 내가 대신 공감성 수치 만땅으로 먹을거라고 예상하긴 했는데 응 그거 클리셰에 절여진 내 뇌의 기우... 의외로 욕망에 솔직한데다가 결단력 좋고 이전까진 누굴 속일 일 없는 평범한 주부로 살다 나름대로 에밀리한테 반격하려고( 물론 상대가 너무 막강했지만) 머리 굴리는 것까지 시쳇말로 빠릿빠릿한 캐릭터더라고.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에밀리는 <에덴의 동쪽>의 ‘캐시’ 를 단박에 떠올리게 했다. 아름답고 너무나도 비밀이 많고 제 욕망이나 보신을 위해서라면 극단적인 선택도 할 수 있어서, 타인의 삶에 걸어들어온 순간 모든 것을 바꿔버리고야 마는. 심지어 방화 부분까지 비슷해서 혹시 캐시가 에밀리의 모티브가 되진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했음. 그런 캐릭터의 외형을 수트로 꾸민건 소소하게 신선했던 부분. 보통은 팜파탈의 전형인 딱 붙는 실크 드레스 같은걸 입고 나왔을텐데. 암튼 그런 에밀리지만 아들을 사랑하고.(이것도 캐시와 마찬가진데?) 그 사랑으로 하여금 범죄도 저지르게 되지만 과거사나 이런 범죄 동기가 너무 동정심을 자극하도록 과잉되어 있지는 않았다.
뭐 나는 신그범처럼 플롯이 용서가 안 되는 수준이 아니고서냐 뭐든 쉽게 납득해버려서 플롯 구멍을 딱히 지적할 순 없고. 그냥 에밀리와 스테파니라는 캐릭터를 잘 그린 것에 대한 칭찬만큼은 해 주고 싶다. 보는 순간만큼은 즐거움. 그리고 키스신만큼으로 이 영화는 가치가 있거든요. 그리고 마티니 먹어보고 싶다. 조만간 집 앞 칵테일바 가게 될듯.



제작진들 모아두고 프로테고 디아볼루카 써서 이 영화에 기여한 자들만 화염을 피할 수 있을거라 하면 미술팀 씨지팀 캐스팅 디렉터 의상팀 빼고는 전소될듯. 예이츠랑 롤링이 일빠다... 아 ㅈㄴㄷ 아니더라도 망할 영환데 이거. 해포 세계관+20세기 미국이라는 매력적이다 못해 듣기만 해도 넙죽 엎드려 받아먹을 준비가 되어 있는 소재를 고작 이렇게밖에 못 써먹는건 명백한 죄야 죄 루즈하고 난잡하고 인물들은 중구난방. 마법 쓸 때만 우와~하고 즐거워하다 나머지 서사 부분에서 시큰둥해지면 그건 마술쇼지 영화가 아니지. 미시적인 것들은 칭찬한다 해도 그걸 다 하나로 모아두는 영화 자체는 허접한걸.


그 외

-레그보랑 제이미 캠벨 바우어 짧게 나왔는데 진짜 어우야 어우 손 잡는거 어쩜

-에디 뉴트는 그냥 보기만 해도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넋 놓게 되는 존재

-퀴니 캐릭터 이렇게 쓴건 좋았음 그냥 천사같은 아이캔디인것보다야

-이게 핔블이랑 동시대 배경이라니 믿을수 없어(하지만 자꾸 토미 셸비 머리한 엑스트라들이 나오면 납득하게 된다

-근데 영화의 만듦새나 다른 요소들 다 버리고 순전히 테마로만 따지면 난 기본 해포보다 신동 시리즈가 더 좋아 까리하게 차려입은 으른 마법사들이 마법 팍팍 쓰는데서 비롯하는 쾌감이 있음


'Cinema' 카테고리의 다른 글

Ford v Ferrari  (0) 2019.12.07
프랑켄슈타인 National Theater Live 후기 백업  (0) 2019.04.08
크리스마스 맞이 연말결산을 합시다(수정중)  (0) 2018.12.25
부탁 하나만 들어줘(2018)  (0) 2018.12.23
Troy(2004)  (0) 2018.12.22


옆에 신화의 이해 수강자가 있어서 뜻밖의 코멘터리를 들으면서 봤다. (이득!) 

뭐 당연히 각색은 엄청 들어갈거라 생각해서 거슬리진 않았는데 캐붕이 너무 심했음. 특히 아킬레우스... 브래드 피트가 아킬레우스라 진짜 할리우드 이놈들 뭘 쩜 아는구나 싶었는데 캐릭터성이 좀 실망스러웠다. 뭐 현실에서 사람은 양극의 면모를 다 가질 수 있고 얼마든 쉽게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창작물에선(그것도 영화처럼 비교적 호흡이 짧으면 특히) 관객의 빠른 몰입을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일관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게다가 캐릭터가 일관성 없는 모습을 보인다 하더라도 그게 설득력이 없는 거랑 있는 거랑은 미묘한 차이가 있거든. 아킬레우스 캐릭터는 전자였다. 사실 머리 싸매면서 아니 쟤가 왜 저러지?하고 시종일관 해석하려 애써야 한다는거 자체가 트로이 같은 영화에선 좀 거추장스러운 요소였음. 이게 <아킬레우스>도 아닌데 말야. 아킬레우스 하나 붙잡고 너 왜 이래 따지기엔 바쁘다고. 그치만 정말ㅋㅋㅋ인간적 호감도 영웅적 호전적 면모도 다 살려보려 하다 외려 혼란스러워진 캐릭터를 브래드 피트가 살렸다고 밖에. 트로이 성문 앞에서 헥토르! 하고 표효하는거 보고 와... 자길 사자라고 칭하는 것 조차 브래드 피트가 하니까 너무나 합당해 보였잖아 네 당신은 사자들의 왕이십니다 이래야 할 것 같구 막. 난 외려 아킬레우스의 그런 단순하고 호전적인 면모가 더 좋았던 것 같음. 차라리 처음 해변에서 저 끝엔 불멸이 있다고 외치며, 영광을 향해 뛰어드는 부나방 같은. 전장의 야차 같은 면모라도 더 살려주지. 내 명예는 죽음과 손 잡고 걷는다 말하면서도 그걸 기꺼이 택할 정도로 명예 중시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치고는 너무 어이없는 계기로-물론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심경이 변할 수 있지만. 브리세이스와의 대화는 단지 '넌 사람을 너무 많이 죽여' 수준으로 뻔하고 얕았다- 전투에 나가 보지도 않은 사촌동생에게 야...넌 사람이 왜 싸운다고 생각하냐... 이런 질문이나 하고 있고. 아킬레우스는 어떤 무모함에 가까운 열정으로 움직이는 캐릭터였는데 그게 너무 쉽게 사그라든 느낌. 그렇다고 그 고뇌가 깊이 있거나 오래 가는 것도 아니고. 나름의 해답을 찾는 것도 아니고. 근데 여기에 대한 파트로클로스 대답이 너무 웃겼음. "아 그거야 왕한테 돈 받앗으닉간ㅠ" 고대인적 충성심+ 현대인적 마인드...! (그치만 파트로클로스는 진심 아마추어의 실력에 프로의 마인드라 보면서 나중엔 슬퍼졌다 아이고 애기야...) 아가멤논도 캐붕의 희생양이라면 희생양일지도. 비호감일 뻔 했다가 오 그래도 저 계산적인 면모가 꼭 현대 정치인 같다고 조금 긍정했다 다시 또 캐붕 때문에 비호감 되서-_-; 딱히 할 말은 없음. 그나마 일찍 안 죽고 비중 있는 캐릭터들 중에 캐붕에서 살아남은 캐릭터들은 오디세우스 빼고는(오디세우스가 현대인이 공감할만한 현실 감각을 갖춘, 매력적인 인물로 나오지 않는 매체가 세상에 존재하긴 할까?) 다 트로이 진영이었던것 같은데. 대체로 끝까지 노답이거나 그 반대거나 둘 중 하나였던것 같다. 헥토르랑 안드로마케 캐릭터가 참 좋았음. 안드로마케 배우분 정말 고고한 그러나 슬픈 운명이 예정되어 있는 여왕 그 자체의 페이스를 갖고 계시더라. 헥토르의 그 선하고 의젓한 인상과 같이 두고 봤을때 진심 근사했다구... 상영 당시에는 아킬레우스보다 헥토르가 더 인기 있었다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별 요상한 고대인들() 사이에서 관객이 꼭 제가 백성이라도 된 양 믿고 의지할건 애국! 가족사랑! 부하사랑! 거기에 현실적인 정치 감각을 겸비한 헥토르 뿐이었다고. 시대물에서 '현대적 감각'을 가진 캐릭터란 대체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전부 구시대 마인드면 관객이 미쳐버리고 또 전부 현대인 마인드면 고구마는 덜 먹더라도 어딘가 어색해져버리고. 좀 사상의 고증?의 미흡함이라고 해야하나) 

맞다 올랜도 블룸이 노답동생 파리스 역이었는데 이것도 레골라스 같은 효과인가(...) 암만 난 그녀를 사랑해! 하더라도 표정이 진지하다기보단 맹해서 도통 믿음직스럽지 않은 막내 왕자 느낌이 한 오백배는 더 산듯.


암튼 막... 전쟁과 한 왕국의 멸망에 대한 울림이 그렇게 크진 않았네 감독 의도가 그만큼 흐릿하단 뜻일까. 그냥 미남들이 많이 나왔고 중간중간 나오는 창술 액션이 굉장히 새롭고 흥미로웠음. 방패들끼리 부딪힐때의 그 둔탁하고도 격렬한 진동은 또 어떻고. 이런 류의 액션 다룬 영화가 있으면 또 보고 싶단 생각 들어서 아마 조만간 <300>도 보지 않을까. 










+) 양덕들 사이에서 브래드 피트 아킬레우스 x 톰 크루즈 파트로클로스 쉬핑이 유행했다는 이야기를 3200년전 cp 파는 동생에게 들어서 ?!?!?!?!??!?!?!?!?미친거 아냐 진짜 누가 생각했어 빨리 하버드 후죠시팬걸학부에서 모셔가야해 하고 주접 떨고 있던 와중에


동생:근데 톰쿨 파트로클로스면 아킬 갑옷 입고 무쌍 찍은게 너무 당연해

나:ㅋㅋㅋㅋㅋㅋㅋ

동생: 트로이 성벽도 신이 방해한게 아니고서야 못 올라갔을 리가 없어 막 부르즈 칼리파 올라가듯 차차차착

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