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치핀치 냐루코쨩. 애니를 본 적도 없지만 <사랑은 혼돈의 노예>는 아주 잘 듣고 있다. 탐사자들 산치 날아갈때마다 속으로 "산치! 핀치! 러브를! 크래프트 싸워나가며!" 흥얼거리고 있음.



제목이 정말 어그로성이 강하다(...) 티알 시작하고 COC만 곧줄 했고 앞으로 할 시나리오들이 삼천개이므로 (초초초장기 캠페인 오리엔트도 다 못 끝냈는데 벌써 다음 계획으로 콜드 하베스트랑 The things we left behind가 잡혀있음) 씨오씨 쳐돌이가 될 운명인가 싶어, 여태껏 플레이하며+다른 사람들 글도 몇가지 읽어보며 느끼고 생각한 것들 두서없이 주절거리기.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과 생각들을 모은 잡문. 타인의 COC에 대한 의견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니알라토텝이 인간을 존중하는 마음만큼도 없음.


하지만 크툴루군 따위 전혀 무섭지 않은걸요!
이 말을 했다간 뭇매 맞기 쉽상 아닐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다. 나는 20세기의 백인 남성이 제 3세계 침입자들에 의해 자신의 문명이 파괴될 것을 두려워하며 써내려간 이야기에서 조금도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뒤룩뒤룩 살찐 거대한 두족류는 보기에는 놀랍고 혐오스러워도 그게 파괴적인 공포로 이어지는지는 잘...내가 서양 호러들 중에서 높게 치는 델 토로의 유령들 같은, 마음을 가냘픈 손으로 두드리는 듯한  기괴한 미학마저도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이건 '러브크래프트'호러에 한정되는 이야기고. 문명에 의존하고 무지를 두려워하는 현대인으로서는 어느 정도 코스믹 호러의 감각에 공감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화권에서 비롯한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이쯤에서 한번 더 고백하자면. 내가 읽어본 미국, 한국, 일본권의 출판 시나리오와 팬메이드 시나리오를 통틀어, 시나리오적인 완성도나 볼륨과는 관계없이 가장 선명한 공포를 느꼈던건 한국의 호질 설화를 바탕으로 한 모 팬메이드 시나리오였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고립된 촌락. 국도와 가까운 산. 무당의 사당... 친숙한만큼 공포스러운 요소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으니! 그러나 다른 시나리오들에서 느낀건 스릴이나 흥미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나는 아는 것을 플레이어와 캐릭터는 알지 못하다, 서서히 알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이 서스펜스의 감각. 그러나 서스펜스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의 근간이 되는 '테러(Terror: 인간의 인식 차원을 확장하는 공포)'는 분명히 다르다. 여태껏 공포스러운 대상으로 여겨왔던 존재들과 모습도, 본질도 다른 것들을 공포의 DNA 속으로 한순간 녹여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물론 게임 속 탐사자들은 진상을 알고 고통스러워하고 공포를 느끼고 광기에 빠지고...etc. 그렇게 반응하겠지만 정작 플레이하는 수호자와 플레이어는 오우 그렇군 (끄덕)정도에서 그쳐버리고 마는 것이다. 내부의 서사와 외부의 게임 플레이어의 체험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괴리가 발생할 수 밖에 없겠지만. 러브크래프트 호러의 경우에는 문화권이나 사회적 체험의 차이로 인해 이 골이 더욱 더 깊어진다.


그럼 뭣이 중헌디
아무리 노력해도, 플레이어와 키퍼의 문화권이나 경험의 차이 등에 의해 메워지지 않는 '공포의 괴리'가 있다면. 어떡하면 좋을까. 나는 그냥 뭐...답을 간단하게 찾았다. 다른 재미있는 요소로 그걸 채운다. 하지만 이건 호러 trpg잖아요! - COC 룰이 애초 공포를 경험하게 하는데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그리고 어차피 같은 파스타 면인데, 로제 파스타 대신 아마트리치아나를 요리해서 내놓았다고 문제될 부분이 있는가? 어디까지나 '맛있는 파스타'라면 그만이라는게 내 생각이다. 그리고 저 두개 정도가 내가 자주 쓰는 재미있는 요소인듯.
(1) 부차적 요소- 또다른 장르호러 TRPG라는 커다란 장르 안에서, 시나리오와 세션이 추구하는 분위기를 강조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서브 장르들을 반영하는 방법. 정통 추리물이라던가, 일본 애니메이션스러운 어드벤쳐라던가... 뭐 그 장르의 전체 문법을 빌려올만큼 본격적일 것까진 없고. 느낌 정도만 가지고 와도 충분한 것 같다. 꼭 장르의 개념이 아니더라도. 상황이 유사한, 좀 아이코닉한 특정 작품들의 느낌을 빌려오는 방법이 익숙한 상황을 통해 플레이어가 적당히 친숙함을 느끼게 하면서도 흥미를 유발할 수도 있고. 시나리오의 '분위기'를 생생하고 매력적으로 살리는데 효과적이라고 느꼈다.(내가 쓴 예시들: 애거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 공포영화 블레어 위치, 게임 레이튼 교수 시리즈, 히치콕 영화 몇편...) 이런 '익숙한' 것들에 크툴루적인 요소들이 섞이면서 만들어내는 그 독특한 면모는 늘 새롭고 생각 이상으로 흥미롭다.이런 장르/작품을 활용하면 이 시나리오의 이런 면을 살릴 수 있겠다 고민해보는 것도 물론 재미있다.
(2) 부차적 요소- 롤플레잉과 캐릭터 빌딩. 서사성의 강조이건 비단 COC 뿐만 아니라 모든 티알피지의 해당사항 아닌가? 너무 뻔하지만. 캐릭터에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쏟기 시작하는 순간 플레이의 재미는 증폭된다. 탐사자의 캐릭터성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  단지 '이렇게 행동하면 유리하겠지?' 이상으로 생각할게 많아진다. 물론 생각을 많이 하면 할수록 플레이는 재밌어지기 마련이다.이런 서사의 강조가 게임성을 해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일부 동의한다. '내 캐릭터쨩은 이렇지 않아'에 매몰되면 세션 망치는것도 한순간이다. 하지만 탐사자들을 이냥저냥 죽으면 즉석에서 갈아치우는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는건 아무래도 내가 추구하는 게임 방식과 맞지 않는다. 이미 검증된 재미와 짜릿한 타격감과 생생한 그래픽을 제공하는 컴퓨터나 비디오 게임을 두고 왜 굳이 티알피지를 하겠는가?  '직접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다' 라는 이유에 있다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큰 틀은 준비되어 있다. 이제 이를 더욱 더 풍성하게, 그러니까 자신만의 이야기로 만들어 나가는 것은 플레이어들의 몫이다. 여기서 제일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캐릭터와 롤플레이다.  아무리 비극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한들. 캐릭터는 결말에 도달하기까지 숨가쁘게 움직이며 그를 둘러싼 세계와 상호작용을 이룬다. 여기서 발생할 수 있는 변수가 얼마나 많나. '으악! 크툴루다! 도망쳐!'라는 기본 이야깃거리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양념거리들 말이다. 플레이어들이 캐릭터 빌딩과 롤플레이에 적극적으로 참가할수록 이런 요소들을 능동적으로 창조해낼 수 있고. '직접 이야기를 써내려 갈 수 있다'는 감각과 거기서 비롯한 재미를 한껏 누릴 수 있는 가능성 역시도 커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캐릭터성을 신경쓰면 생각할 것 만큼이나 재미도 늘어나는건, 키퍼도 마찬가지다. 잘 짜인 캐릭터들을 보고 '아, 이 설정을 활용하면 이런 이벤트를 만들 수 있겠군. 이 캐릭터와 이 NPC는 이런 느낌으로 상호작용을 할 수도 있겠군. 이 캐릭터의 가치관을 고려하면...' 이런 즐거운 고민도 할 수 있다.. 장기 캠페인의 경우에는 캐릭터가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볼 수도 있고 말이다. 그리고 내가 티알피지의 매력으로 치는 '의외성'(같은 시나리오라도 다른 탁, 다른 탐사자들 구성에 따라 흐름이며 디테일이 굉장히 달라진다.)은 캐릭터들의 개성이 뚜렷할 때 가장 예상치 못하고 즐거운 방향으로 꽃피는 것 같다. 잘 짜인 캐릭터들은 살아 숨쉬는 실제 인물과도 같다. 그만큼 예측하기가 어려워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데, 또 그걸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캐릭터의 갈등과 성장이 훌륭한 서브플롯을 만들어 낼 수도 있으며. 이것이 시나리오 내에서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게 될 수도 있다. 이쯤 되면 플레이가 문학성마저 성취하게 된다. 물론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기계적으로 관찰력/듣기/근접전/회피/ 엔피씨와는 필요한 대화만 하기/  루틴만 굴리는 것보다 충분히 재밌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 분위기라는 말을 엄청나게 되풀이하고 그만큼 반복하고 있다. 내가 추구하는 필수 요소중 하나이므로 어쩔 수 없음.

그놈의 분위기 못잃어
그럼 대체 그놈의 분위기가 왜 이렇게까지 중요하게 느껴지는거지? 

분위기는 문학 작품의 서사 구조의 한 요소이다. 이 독자를 포위하고 감정적 설정을 생성하기 때문에 또한 분위기로 지칭될 수 있다. 기분은 정신적 심리적으로 독자에 영향을 하고 이야기에 대한 느낌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다. 이는 복잡한 읽기 전략이다.
... 라는 것이 위키 백과의 설명이다. 여기서 왜 그렇게 중요한지가 대충 설명이 된 것 같다. '독자를 포위하고, 감정적 설정을 생성한다.' 플레이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큰 요인 안에는 '플레이어가 얼마나 몰입할 수 있었느냐?"가 들어있다. 몰입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이 분위기를 정교하게 구성해, 게임 속의 세계를 실체화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걸 만들어내는데는 여러 수단이 쓰일 수 있다. 일단 필수적인 것이 머릿속에 세계를 미리 그려놓고. (몇가지 단어나 이미지로 이를 요약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플레이 내내 잊지 않고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으니.) 잡힐 듯 생생한 세계의 묘사를 위해서는 공간의 묘사나 인물, 복식, 심지어는 음식과 같은 지극히 미시적인 요소들에 신경쓰는 것도 때로는 도움이 된다. 배경음악이나 이미지 자료의 디자인도 이런 '분위기' 이끌어내기에 효과적이었던것 같다. 때로는 '저택 현관의 기둥은 갓 핀 장미를 떠올리게 하는, 붉은색보다 흰색의 비율이 더 큰 분홍빛 크랙이 들어간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고 엔타블러쳐는 코린토스 식이고 길이는 얼마나 되고... 그 뒤에는 고딕 양식의 목조 버트리스가 지탱하고 있는 지붕이 있는데... 이 지붕에 새겨진 무늬는...'라고 설명하는 것보다도 딱 어울리는 그림이나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런 곳이에요' 라고 말하는게 더 효율적일 때도 있으니. 물론 이걸 너무 남용하면 게을러 보일까봐...

시나리오의 분위기 결정하기의 예시)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같으면 좋겠는걸...하지만 꿈속 세상이니만큼 현실과 차별화 된 부분이 있었으면 좋겠어. 시간대는 중세에 가까운 느낌이지만 서유럽의 중세는 너무 흔하게 다루어져서 어딘가 신비스러운 느낌은 덜하고, 또 어둡고 불결한 이미지도 있으니 다른 문화권에서 모티브를 빌려오자. 이슬람 문화권 어때? 물론 이를 그대로 가져오면 단지 과거의 현실 세계를 반영한 셈이라 신비한 느낌은 줄어드니, 가상의 공간이란 느낌을 주기 위해 적당히 비잔틴적 요소들도 섞자. 그러면 '시공간 배경은 중세의 비잔틴/ 이슬람 문화권 제국의 느낌을 띄고. 스토리 진행이 풍기는 이미지에서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군. 이제 이미지 자료를 찾아 미리 의복이나 배경 묘사를 해두자. 배경음악으로는 좀 독특한 악기가 많이 쓰인 곡들이 좋겠어. 또 너무 서구 클래식을 떠올리게 하는 음의 구성도 피하고. 애니메이션 <보석의 나라> 사운드트랙이 적당하겠네. 


좋은 시나리오의 선행 조건
그냥, 여러 이유로 '내가 생각했을 때'  특별히 좋았거나, 플레이 하고 싶어지는 시나리오. 그리고 그 반대 경우에 속하는 시나리오의 요소에 대한 이야기. 참고로 읽고 플레이 해본건 호러 기반의 다인이 대부분이라... 관계 기반 2인 시나리오(타이만 계열)에 대해선 잘 모른다. 사실 '이런 장르/이런 형식/ 이런 소재의 시나리오는 잘 쓴 것입니다'라는 분류는 좀 무의미한 것 같다. 그런 부분들은 어디까지나 취향이 결정하는 영역이니까. 대신 내가 생각했을 때 괜찮은 시나리오에 필요한 조건은...
-'예외 상황'에 대한 고려가 충분한 시나리오.사실 이 점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도 이 문단은 의의를 다 한 셈이다. 꼭 결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건 아니다. 결말보다는,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예외 상황과 변수들이 얼마나 잘 고려되었는가?'가 문제지. 한국, 일본계 팬메이드 시나리오들은 묘사만 보면 한 편의 소설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지문 하나하나가 촘촘하고 훌륭하게 짜여 있는데. 의외로 '돌발 상황'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경향들이 있는것 같다.('경향'이 있다는 거지, 일반화가 아니다. 내가 그렇게 느꼈다는 거다.) 일이 반드시 이렇게 풀린다는 전제 하에 작성된 느낌이다. 몇몇 상황에서 변수를 제시해도 보통 두개, 아주 드물게는 3개 정도다. 키퍼가 '시나리오에 따라' 일이 풀리도록 유도해야 할 부분이 많다. 반대로 출판 시나리오들은 이에 비해 굉장히 루즈하다 '묘사'라고 하면, 공간이나 인물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상황은 '플레이어들이 이렇게 한다면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걸 하기 위해서는 ~롤을 굴려야 합니다.(물론 이도 키퍼가 원하는대로 조정할 수 있다)'  정도로 아주 간단하게 제시된다. 그러니까 '분기점의 종류' '(아마)그에 따라 일어날 결과' 정도만 제시되어 있는 정도다. 왜냐면 변수들이 많아서, 그걸 하나하나 묘사하려면 끝이 없거든. 예를 들자면, 방에 추적하고 있던 범인이 들어왔다! 이 상황에서 (a)범인의 정체에 대해 갈피를 못 잡은 상황이다 (b)범인의 정체에 대해 알아냈다. (1)탐사자들이 방에 있다 (2)방에는 없지만 어쨌든 가까이 있다 (3)방과 아예 멀리 떨어져 있다. 이 모든 경우에 따라 시도해볼만한 행동이나 그에 따른 결과가 모두 제시되어 있는 식이다. 문제는 게임 내에서 예외성과 돌발상황이란 없을 수 없는. 없어서 안되는 존재다.아까도 예외성 예찬을 실컷 펼쳤지 않나. 그게 세션을 재밌게 만들어주는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면 당연히 아쉬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아주 사소한 행동도 인과로 인해 예외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는데. (예시: 단서를 얻으려고 할때 정보원에게서 위협적인 태도를 사용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정보원은 뒤따라온 사교도들에게 탐사자들의 위치를 누설한다) 이게 아예 반영되지 못하면 게임 내의 상황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도 떨어진다. 시티계 오픈형 시나리오라면, 돌발상황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모자란 경우가 더욱 아쉬워진다. 사람, 사건, 장소같은 자원이 한정되어 있지 않다=일어날 수 있는 변수의 수도 훨씬 커진다. 이런 점이 조금 덜 고려된게 아닌가 싶어서.
개변 금지에 대해서: 물론 창작자 마음이므로 내가 이래라 저래라 제동을 걸 이유도 자격도 없지만. 조금 극단적인 개념이라 생각한다. 플레이어들이 시나리오의 진상이나 필수 NPC, 인원을 바꿔서 이런 제한을 걸어둔다는데... 내가 아는 한 영미권 시나리오들에는 시나리오에는 개변 금지라는 개념이 없다. 게임 플레이에 필수적인 요소들이나 진상은 바꾸지 않고. 그 외의 모든 것은 자유자재라는게 당연시되고 있어선가.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물론 니들에게만 그렇겠지)
이건 클래식 크툴루(1920)에 대해.1920년대 같은 경우에는... 동인 등지에서 '중세'(물론 이건 심각한 역사적 오류가 있는 명칭이지만)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시대를 넘어 보다 '현대'에 가까운 시기로 넘어오기까지의 과도기인지라. 범람하기 시작한 풍요와 기술적인 혜택과 더붙어 채 지우지 못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지한 혐오와 야만이 공존하고 있다. 아직 대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있지만, 동시에 2차 대전의 그림자가 천천히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런 시대다. 명암의 대비가 뚜렷하다. 이것들이 플레이의 양념이라면 양념이라 생각한다. 화려한 재즈 파티와 금빛 아르데코 문들 뒤의 끈적이는 음습한 공포들. 이 대비는 독특한 정취를 형성해  내가 게임에서 특히 중요시하는 이미지와  고유한 '분위기'에 대한 요구를 충족하고. 클래식 크툴루만의 대체불가한 특징이 된다. 또한 여러 이유로 희석된 신화적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공포는, 때로는 보다 현실적인 층위에서 빌려다 채우면 되는 것이다.  모독적 음모에 개입된 자비없는 갱단, 대전쟁에서 상실한 인간의 선함에 대한 믿음. (인간은 이렇게까지 해서 구할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 날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새로운 발명품들과, 꺾일 리 없는 진보에 대한 낙관이 실은 어떤 관점에서는 아주 하찮고 무력한 것이었다는 깨달음.(이는 현대 배경 시나리오에도  드라마틱하게 사용될 수 있겠다) 때로는 사교단체만큼 비이성적인, 야만의 그림자(노골적인 이민자 차별과 혐오, 우생학과도 같은 비합리적 학문의 팽배. 이는  탐사자들보다 현대인인 플레이어에게 더 효과적으로 가 닿을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요소. 실존했던 혐오와 비합리성이 플레이에서 꼭 반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긴 말 하지 않겠다. 여기에 대해선 이미 '넣고 싶은 사람은 넣고, 불쾌하다면 빼고' 식으로 7판에서 확정지어 놓은지 오래니까. 나같은 경우에는 주변 세계에는 이 요소를 반영하고. 주역인 탐사자들에겐 여기서 벗어난 현대적 관점을 허락한다. 플레이어 캐릭터가 여성혐오자나 인종차별주의자, 우생학 지지자라면 얼마나 롤플레잉이 불쾌해지겠는가? 게임 내적으로도 이 방법의 강점이 존재한다. 당시의 주류 사상과 상이한 사상을 가진 캐릭터는 필연적으로, 외부와 충돌하게 되어 있다. 외부 세계와의 갈등. 캐릭터 빌딩에는 필수적인 이 상황을 보다 쉽게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캐릭터가 입체적인 면모와 생명력을 얻는 이점도 누릴 수 있다. (음험한 프로-가스라이터 개자식 같아 보이다 우생학과 전쟁 이야기가 나오니 가차없는 바른말맨이 되버린 우리 탐사자 박사가 떠오른다. 참 흥미로웠는데.) 당시 시대상의 추한 면까지 반영하면서도 플레이어와 수호자인 우리는 당대의 사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선을 그어두고. 롤플레잉과 캐릭터 빌딩의 부차적인 흥미도 챙길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 플레이를 위한 리서치 도중 20년대에는 우생학이 전세계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까지도 존경받는 지성인들과 지도자들. 루즈벨트 대통령도, 카네기와 처칠도. 심지어는 헬렌 켈러마저도 인간 유전자의 우열을 가리고, 품종 교량이라도 하듯 말살할 종과 번성시킬 종을 골라내는 이 학문(실은 학문의 겉거죽을 뒤집어쓴 역겨운 우월주의와 혐오였지만)이 인류의 발전에 기여한다고 믿었다. 그 순간만큼 공포를 느꼈던 적도 없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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