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도련님의 일기 2019. 1. 28. 23:40
그러고보니 새삼 글 안 썼다...반성...
작년 겨울? 쯤에 썰풀다 삘 받아서 짧게 쓴거 다듬어 올리기. 원래는 계절별로 파트 나눠서 쓰려고 했는데. 완성된건 봄 파트 뿐이네
칼 프리스크 그림 속의 색이랑 볕, 미스 줄리에 나오는 정경들 생각하면서 씀. 쓰면서 들은 곡들은 미스 줄리 사운드트랙들. 겨울 파트는 슈베르트 Nocturno E-FLat, Op 148. D 897. 그것도 극초반의 고요한 부분만.
겨울
그의 봄은 늘 상실과 함께 시작되곤 했다. 무엇 하나 소중한 것을 잃으면 그때야 약속이라도 한듯 창 앞의 사과나무가 꽃을 피웠다. 작년에는 아끼던 사냥개 윌로우를 묻어야 했다. 제작년에는 백은 시계를 강에 빠트렸다. 보다 더 오래 전에 잃은 것들로는 넥타이 핀. 일기장. 상아 구슬... 따라서 눈이 녹기 시작할 제, 이 도련님은 벌써부터 올 봄이 가져가고 말 것은 무엇인지 점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른 아침 뺨을 스치는 공기에서는 여전히 서늘한 향이 났다만 두꺼운 모직 외투는 이제 거추장스러웠다. 한 손에는 벗어둔 외투를. 다른 한 손에는 라이플을 들고 돌아오는 그를 불그스레한 얼굴의 마부가 맞아주었다. 도련님, 총성이 아침부터 요란하더이다. 그는 날씨가 풀렸기에 나서 보았노라 웃었고 마부는 강의 얼음이 약해진 걸 보고 도련님이 또 뒷산으로 나섰겠구나. 진즉 알았다 답했다. 도련님도 강에 함부로 가까이 갈 생각은 마십쇼. 그러나 풋내 나는 하녀 다이앤은 기어이 늦겨울의 문턱에서 스케이트를 타보리라 고집을 부렸다. 작년 겨울 읍내 상점에서 산 상아색 스케이트는 모두의 부러움을 샀으나 정작 그녀는 겨울 내내 강둑 근처에도 가 보지 못했다. 하긴. 봄은 금방이라도 닥쳐올 것 같았으니 마음이 조급해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다이앤은 결국 흠뻑 젖고 얼음장처럼 차가워진채 빌리의 등에 업혀 돌아왔다. 열이 무섭게 끓었고 의사는 요양이 필요하다 말했다. 도련님은 그녀의 밭은 기침이 못내 마음에 걸려, 몇달 몫의 삯을 쥐어주곤 고향으로 기차를 태워 보냈다. 원채 일손이 적은 저택인지라 고작 한 사람이 사라졌음에도 그 빈자리가 컸다. 집사는 봄이 오기 전 까지 새 하녀를 구해오리라 말했고. 도련님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무심한 얼굴에 일이 손에 익은 중년의 여인이길 바랬다. 그래서 추천장의 이름을 보았을 제, 의심스러운 눈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델레이드. 그 부드러운 울림은 하녀의 이름치고는 고상하지 않나. 다만 그는 고작 하녀의 이름보다는 더 신경을 기울여야 할 것이 많았고. 그의 손길이 굳이 닿지 않아도 될 것들- 이를테면 고용인 문제-는 전적으로 집사에게 맡겨버리곤 했다. 그러지만 않았더라면 그 해 봄은 무사히 넘겨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신입 하녀와 마주한 것은 삼월의 첫 날이었다. 때늦은 폭설이 내리고 며칠이 지난 후였다. 하녀장이 쌓인 눈 탓에 마차가 갇혀 예정보단 늦게 도착했노라 대신 말하는 것을 반쯤 흘려들으며 여즉 발갛게 얼은 뺨이며 손등의 결이 거칠긴 하되. 마디는 굵어지지 않은 손을 무감하게도 보았다. 그는 신입 하녀가 제가 바라던 부류의 이는 아님을 직감했지만. 그렇다고 야멸차게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나치게 단촐한 짐가방이 마음에 걸려 괜히 더 두어번씩 눈길을 주게 되었다. 아마 저 작은 가방 안에 그녀가 가진 것의 전부가 들어 있겠다만. 차림새만큼은 여느 어염집 아가씨마냥 말끔했다. 모자 아래로 곱슬거리는 적갈색 머리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환영해요, 스노든 양. 의례적인 미소를 띈 그가 입을 열자 하녀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왜 그렇게나 투명한 눈빛이었는지. 왜 그렇게나 푸른 눈이었던지. 지금 돌이켜 보아도 조금은 원망하게 되는 것이다.
창 밖으로 꽃망울이 움트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봄은 기어코 오고 말 것을. 그는 비로소 그 눈을 보고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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